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3.01.15 00:32

3년간의 나눔의집...

 

2010년 2월부터 원주나눔의집을 대표로 발령받아 3년간 좌충우돌 했습니다.

 

그 동안 주교님께서 나눔의집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교회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하셨었습니다. 원주에 사제가 2명 있으니 교회와 나눔의집을 나눠서 일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교회도 맡고 나눔의집도 맡으면 둘의 조화를 이루는 이점도 있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쫓다보면 모두 놓쳐버릴 위험이 있으니 말입니다. 실제로 지난 3년을 뒤돌아보면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주교님 뜻에 따라 저는 이제부터는 교회 일에 전념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눔의집 신임 대표로 발령 받은 분은 현 햇살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인 이쁜이(에스더) 신부님입니다. 이 신부님은 김경현 신부님이 계셨던 2007년부터 전도사로 발령받아 현재까지 6년동안 원주나눔의집에서 일하셨습니다. 고용지원부장과 아동교육부장, 햇살공부방 센터장을 역임하면서 사회선교를 통한 성소를 키워왔고, 부제와 사제 서품을 받았습니다. 원주와 나눔의집을 잘 아는 분이고, 나눔의집이 훈련시키고 키워낸 사람인만큼 누구보다 성실하게 책임을 다 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나눔의집 대표직은 내려놓게 되었지만, 원주에서 사목을 계속하게 되기 때문에 삶에 큰 변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나눔의집과 지역을 위해서 힘껏 돕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여, 부서진 희망과 깨어진 약속을 가지고, 당신 앞에 나옵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낫게 하시나이다.

주여, 어긋난 관계들과 상처 입은 마음을 가지고, 당신 앞에 나옵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낫게 하시나이다.

병 든 몸과 멍든 마음을 가지고, 당신 앞에 나옵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낫게 하시나이다.

쇠약해진 영혼과 절망을 가지고, 당신 앞에 나옵니다.

당신만이 우리를 낫게 하시나이다.

 

-켈틱 기도문 중에서

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2.11.28 13:05

 

 


“주님, 오늘 아침에 일어날 수 있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집 벽이 무덤이 아니고 우리 집 침대가 관이 아니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이 줄에 서 계실 줄 압니다. 저희가 주님을 잘 대접할 수 있게 해주세요.” (메리 글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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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는 미국의 수도 워싱톤D.C에 있는 ‘무료 식료품 제공 센터’에서 매주 토요일 아침 문을 열면서 드리는 어느 봉사자의 대표기도입니다. 소량의 식료품을 타기 위해 센터 벽에 길게 줄을 서 있는 가난한 사람들 속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고백입니다. 이 봉사자 역시 그 줄에 서 있어야 할 정도로 가난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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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도는 특별합니다. 기도의 대상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나와 다를 바 없이 보잘 것 없는 가난한 우리들 속에 계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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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웃들을 업신여기지 말고 인격적으로 대하자는 계몽적인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은 가난을 미화하고자 함은 더욱 더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그 속에 기쁨이나 행복, 삶의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주한 고액 연봉을 받는 사람들보다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음미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메리 글로버라는 봉사자도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위의 기도는 하루의 삶이 또 한 번 주어졌음을 확인하고, 생명을 경탄하며, 가난한 우리들이 이 삶을 만들어가는 주체임을 상기시켜 주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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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성공회 뉴왁교구의 스퐁 주교는 말하기를 ‘유배당한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전능하지도, 인자하지도, 자비롭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전능하신 분이라면, 그들을 유배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승리하는 자들의 찬양을 기뻐하시는 분이라면 그분은 영원하다고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때 승리했던 자들이 그들의 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건축물은 지금 오래된 유적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지금 이곳에서 인간성의 부서진 증상들을 제거하도록 우리에게 입김(바람)을 불어 넣어주시는 분입니다. 한 사람이나 한 계층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우리들이 생명과 사랑과 온전함으로 나아가도록 요청하는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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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마태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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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들 중에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분들을 돌아보게 되는 계절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그들과 내가 연결되어 있고, 그 이어져있는 줄 가운데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 정성스럽게 나를 개방하고 나누며 기쁜 성탄 맞이하시기를 빕니다. 



하느님이 이곳에.hwp


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2.11.01 13:19

나눔의집 정체성 “가난, 공동체, 나눔”

 

소식지 100회를 맞이하여, “나눔의집”의 정체성을 로고를 통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나눔의집 로고가 드러내는 상징은 “가난, 공동체, 나눔”입니다. 우선 초승달 모양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달동네를 떠올리게 합니다. 나눔의집은 1980년대 도시빈민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가난이란 경제적 의미의 가난 뿐 아니라 어린이, 여성, 장애인 등 사회의 소수자들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가난과 소외로부터의 해방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청빈”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로고에서 달모양 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은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나눔의집 운동은 기본적으로 지역 공동체운동입니다. 파편화되고 고독해지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더불어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나눔의집 정체성입니다.


그리고 민들레가 씨앗을 흩날리는 형상은 “나눔”을 의미합니다. 가난의 극복도 공동체도 결국은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거친 땅 위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씨앗을 뿌리는 들풀처럼, 힘겨움 속에서도 나누는 이웃이 공동체를 지탱해 줍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마태 6:11)

 

이 성경구절은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주의 기도” 중 일부입니다. 이 짧은 구절 속에 “가난, 공동체, 나눔”이 모두 함축되어 있습니다. 나눔의집 정체성이 이 짧은 기도문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오늘 필요한 양식’이란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은 정도의 양식이란 뜻인데, 이는 정당한 수입과 의로운 소비를 말합니다. 양식은 우리에게 ‘오늘’을 선물합니다. “한 사람이 백 일 동안 먹을 것을, 혹은 백 사람이 하루에 먹을 것을 한 사람이 단 하루에 소비하지 않게 하소서.” 내 ‘오늘’에 만족하고, 다른 사람의 ‘오늘’까지 탐하지 않게 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가난’과 ‘청빈’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의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양식’이라고 기도하게 한 뜻은 ‘공동체적 나눔’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홀로 살도록 되어 있지 않고, 하느님께서 삼위일체로 계시듯, 인간도 상호의존을 하며 살도록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양식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만 먹을 것이 아니라 딱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무도 “나의 양식”이 나에게 주어졌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주어지고, 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주어지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나에게 주어집니다.(마이스터 엑카르트)

 

나눔의집은 그렇게 존재할 것입니다. 지역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나눔의 통해 기적을 누리는 오늘을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 일상이 단순히 일이 아니라 구도의 길이기를 소망합니다.



나눔의집 정체성.hwp

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2.09.25 00:06

섬김의 지도자

 

“어린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앞에 세우시고 그를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곧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또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곧 나를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성경 마르코의 복음서 9:36~37)

 

어느 날부터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어떤 것을 제자들에게만 비밀스럽게 가르쳐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잡혀서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 그들에게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게 될 것’이라는 본인의 죽음예고였습니다. 제자들은 다소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가 예수님께 혼쭐이 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충격에 빠진 제자들을 안심시키시려는 듯 몇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 온통 새하얗게 빛나도록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제자들 중에 누가 첫째가는 제자인가의 문제로 서로 다투었습니다.


자신의 삶을 응축시킬 십자가 사건을 앞에 두고 있는 예수님으로서는 우왕좌왕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 괘씸하기 보다는 안타까운 심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앉히고는 위의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과 하느님을 영접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이십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씀인데요, 이 말씀 안에는 섬기는 자에 대한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상징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나 고분고분한 사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린이는 호기심으로 앞뒤 분별이 없이 사고를 치거나, 어른들 말을 잘 듣기 보다는 자기주장을 강하게 요구하기 쉽습니다. 어린이는 연약한 사람, 낮고 천한 사람, 뭔가 부족한 사람,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라는 말씀은, 누가 첫째가는 사람인가? 다른 말로 하면, 누가 우리 공동체의 제일 높은 지도자인가? 이런 다툼이 실은 부질없는 것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지도자란 그 공동체의 가장 낮고 연약한 사람을 섬기며, 그 공동체의 일원으로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삶이 세상에서 업신여김을 당하는 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 일으켜 세워주는 일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도 보편적인 영적 각성을 일으켜 평화롭고 정의로운 하느님 나라를 구현하기 위한 희생이었습니다. 지도자란 남이 마시기 싫어하는 쓴 잔을 자청하여 마시는 사람입니다. 높고 영화로운 하느님을 영접할 게 아니라, 낮고 연약한 이 땅의 민중을 영접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제 우리나라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1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대선 경쟁이 치열합니다. 부디 높은 자리에서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으며 사람들을 내리 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 땅의 가장 낮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는 일에 온 몸을 바칠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꼴찌가 되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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