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2.04.27 17:03

호저면 무장리 마을회관 앞 섬강 강뚝으로 이어지는 1km 남짓의 도로변에는 라일락이 심겨져 있습니다. 매년 봄이 되면 보라색 라일락이 강뚝길에 흐드러지게 피어납니다. 늘봄학교로 어르신들을 모시러 차량운행을 하다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을 찍었습니다. 


무장리와 산현리는 섬강 윗말 아랫말입니다. 두 마을을 이어주는 다리가 장현교입니다. 어르신들 말에 의하면, 1970년대까지 다리가 없어서 물이 많지 않을 때는 바지를 걷고 건너다녔고, 물이 많을 때는 배를 타고 건넜다고 합니다. 산현리 쪽에서 원주시내로 나오려면 반드시 섬강을 건너야 하는데, 장마철에는 배도 건널 수 없었으니 어려움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시내에 사는 가족들이 방문할 때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거나 위험을 무릅쓰고 건너야 했으니까요. 또 학생들도 시내 중고등학교에 등교해야 하는데 얼마나 어려웠을까요. 장현교가 놓여진 것은 1981년, 최규하 대통령 때였다고 합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원주가 고향이고 호저면 주산리에 선산이 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 큰인물이라도 나와야만 그나마 다리도 놓여지고 살만해지니 정치인을 뽑을 때 지역을 보는 습관이 생겨난 것도 이해가 갑니다. 산현리, 무장리를 이어주는 이 장현교 덕분에 칠봉유원지를 쉽게 찾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도 장현교 앞에는 과거에 배가 다녔던 나루가 있었음을 상징하는 배모양 조형물이 있습니다. 현재 놓여진 장현교는 2003년에 다시 놓여진 다리입니다. 과거의 다리는 강둑이 낮아서 여름 장마철이면 섬강이 범람하여 물난리를 겪곤 했다고 합니다. 


아쉬운 것은 4대강 관련 사업으로 섬강이 옛모습을 많이 잃어버렸습니다. 반듯반듯 쭉 뻗은 강뚝이 건설기술을 보여주는 듯 깊은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자연미가 없어져 버린 모습이 못내 아쉽습니다. 그 아쉬움을 달래주는 듯 매년 4월이면, 라일락의 진한 향기가 섬강가에 퍼집니다.


 

무장리 섬강가에 핀 라일락


 

강둑길을 따라 라일락이 피어 있습니다.


무장리와 산현리를 이어주는 장현교 앞에 있는 배 조형물. 과거에 이곳은 '장포'라고 불렸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마을 사람들의 뜻이겠지요.


2003년 다시 놓인 장현교


장현교에서 바라 본 섬강. 오른편이 무장리, 왼편이 산현리입니다. 산현리 방향으로 가면 칠봉유원지가 나옵니다.









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2.04.10 11:14

산수유가 활짝 피었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늘봄학교에 오시려고 기다리시는 어머님들을 모시러 봉고차를 몰고 다닙니다. 산현리, 무장리, 대덕리, 고산리, 막골... 등에서 40여분의 어르신들이 늘봄학교에 오십니다. 요즘 길가에 가로수로 심어 놓은 산수유가 노란색 꽃을 활짝 피웠습니다. 봄이 왔습니다. 봉고차 안 어르신들의 이야기 속에도 꽃 이야기가 묻어납니다. 당신이 산수유 꽃 필적에 시집 왔다는 이야기, 어릴 적에 지천으로 핀 진달래 따던 이야기, 먹을 수 있는 꽃으로 만드는 음식이야기, 지지난해 날이 엄청 추워서 매화가 다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 등등 십분여의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사연이 그리 많으신지 서로 먼저 이야기를 나누십니다. 덕분에 저는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즐겁습니다.


 

 

나눔의집이 호저면 소재지 가까이에 있다보니, 어르신들께서는 늘봄학교에 나온 김에 농협일도 보시고, 면사무소에도 들리고, 시장도 보십니다. 몸도 불편하고, 버스 차 시간 맞추어 나오려면 그것도 일인데, 늘봄학교에도 나오고 식사도 대접받고, 나온 김에 아울러 일도 보시려는 것입니다. 면소재지가 가깝다고는 하나 어르신들의 걸음으로는 무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무자들이 눈치를 채고, 어르신들의 편이를 위해, 점식 식사 후 쉬는 시간에 농협에 차량운행을 한 번 더 나갑니다. 설거지가 적지 않을텐데도 일보다 사람을 먼저 돌아보는 마음 씀씀이가 예쁩니다. 요즘은 어르신들이 개사료, 닭사료를 많이 사십니다. 봄이라 운동량이 많아진 가축들을 잘 먹이시려는 것입니다. 덕분에 차량운행하는 중간중간 집집마다 사료배달도 합니다. 어머님들이 고마워하시며 커피한잔 하고 가라는 걸 바쁘다며 사양하고 돌아나올 때 뭔가 으쓱합니다. 시골교회 사제의 삶의 맛이 이런 것 아니겠나 하는 감상이지요.

 

호저면 곳곳에 이야기가 흐르고 머무는 곳들이 있습니다. 가까이는 호저장로교회 새벽종 소리, 거대하고 아름다운 호저초등학교 운동장 플라타너스 나무, 아직도 버스가 다니지 않는 마을 막골, 동학 2대교주 해월 최시형 피체지, 메밀묵이 맛있다고 소문난 허름한 막국수집, 농촌 다문화가정의 장점을 살려 춤으로 승화시킨 호저춤, 맑은 계곡 물이 흐르는 칠봉유원지와 어느 왕자의 태를 묻었다는 태실,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을 만나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이야기 지도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사로운 이야기이든 역사적 이야기이든 지금 우리 마을을 흐르고 머물고 있는 이야기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기록해 두는 이야기 지도입니다. 어떤가요? 우선 소식지에 이야기들을 실어 보려합니다. 혹시 호저마을에 내려오는 이야기가 머물고 있는 장소와 기억을 나누고 싶으신 분은 연락주세요. 지금 호저면에는 산수유 노란꽃이 만발했습니다.


산수유가 활짝 피었습니다.hwp


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2.03.12 12:42

시장바닥 같은 마음 비우기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가까워지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성전 뜰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금상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버리며 그 상을 둘러엎으셨다. 그리고 비둘기 장수들에게 ‘이것들을 거두어가라. 다시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꾸짖으셨다.” (요한 2:13-22)
 

 

‘성전정화’라는 장면으로 잘 알려진, 성서 속에서 예수께서 직접적으로 물리적 폭력을 사용하는 단 한 장면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은 비폭력주의자이다’라는 말에 동의할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 속에는 버젓이 이렇게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위 성서구절을 보면 심지어 무기(채찍)를 직접 제작하였다는 점이 더 충격을 줍니다. 물론, 밧줄로 만든 채찍이 무슨 대단한 무기라고 호들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만, 무기의 화력이나 폭력의 강도가 문제가 아닙니다. 과연 이 분이 ‘오른뺨을 맞으면, 왼 뺨도 돌려대라.’고 가르치셨던 그 예수님과 동일한 분인가 의심케 만든다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폭력을 사용한 장면은 성전정화 때가 유일하지만, 예수님은 평소에도 상대가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는 언어를 자주 사용하였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인 바리사이파나 율법학자들을 ‘위선자, 뱀 같은 자, 독사의 족속’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유대인의 최고 권력자를 ‘여우’라고 지칭하는가하면, 딸의 마귀를 쫓아 내 달라고 부탁하는 한 이방여인에게 ‘자녀들에게 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거절하기까지 합니다.(강아지는 번역 과정에 순화된 말이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어머니와 형제들을 얼굴도 보지 않고 돌려보내는가하면, 제자들 중 가장 충성스러운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시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평소에 언어폭력을 일상적으로 사용하시더니, 급기야 성전에서는 무기를 자체 제작하셔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지경에 이르셨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아마도 제 글의 의도를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폭력주의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드러내시기 위해서 다소 충격적인 방식을 선택하십니다. 그것은 그저 평화롭고, 조용하고, 잘 정돈되고, 기존질서에 순응하고, 아주 천천히 이루어지는 변화와는 거리가 먼 방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시급하게 변화시켜야 할 ‘긴장감’을 갖도록 요구하십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 하신 말씀이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신학용어로는 ‘종말론적 시급성’이라고 일컫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시급하게 변화를 필요로 하는 부분은 어디일까요? 개인적인 윤리와 양심? 사회적인 진보와 혁명?

 

가장 극단적이고 쇼킹한 성전정화의 사건에 주목해 봅니다. ‘성전’은 하느님과 직접 대면하는 곳이며, 모든 이해관계와 타산을 뛰어 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내 신념이나 주의주장을 내려놓고 하늘의 뜻을 경청하는 곳입니다. 성전이 ‘시장바닥’이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종교/정치/경제 권력이 서로 결탁하여, 착취하고 억압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것 아닐까요? 하느님을 향한 나의 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로지 사제와 결탁한 사람들의 이익을 채워주어야만 제사를 드리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게 되니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이용하여 불의한 착취구조를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시고 분노하셨고, 성전정화에 직접 행동을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사회적 실천입니다. 예수님은 그 때부터 불순세력으로 낙인 찍히셨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우리 몸이 ‘하느님께서 머무는 성전’이라고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하느님 나라를 위한 개인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집, 성전은 기도하는 곳’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분주한 일상 속에서 내 몸은 시장바닥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지치고 피곤합니다. 광고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가치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잘생기고, 멋지고, 비싸게 치장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다는 선전입니다. 이곳에서 나를 잃지 않으며 조용히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서 시장바닥에 머물지 않도록 마음을 비우고 하늘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웃에게 얼굴을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