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1. 12. 1. 15:48

성공회이야기 5. "강원도와 성공회"

 

 

이제 성공회가 강원도에 전래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현재 강원도는 공동선교구역으로 되어 있으며, 서울교구와 대전교구에서 선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우선 서울교구는 춘천교회, 춘천나눔의집, 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 강촌 성요한 피정의집 등이 있으며, 대전교구는 태백교회, 태백 신나는집, 예수원, 원주교회, 원주나눔의집, 강릉 더불어숲지역아동센터 등이 있습니다.

강원도에 성공회가 첫 발을 내딛게 된 것은 1933년 춘천에 선교교회가 설립되면서부터입니다. 원주 귀래면 운남리에도 선교교회가 있었으나 1970년대 폐쇄되었습니다. 충주교회가 1924년 설립되었으니, 충주-귀래-춘천-서울로 이어지는 교구장 순방길을 따라 교회가 설립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춘천교회는 1949년 성당건물이 축성되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되기도 하였습니다. 춘천교회는 1988년 부설기관으로 “사회선교센터”를 설립, ‘민족통일을 위한 평화학교’를 운영하고 꾸준한 지역조사활동과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1989년 2월 춘천YMCA와 공동으로 제1기 민족학교를 개설운영하는 등 지역봉사 및 에큐메니컬운동, 농민선교, 청년-대학생 선교, 노동선교와 민속문화활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춘천나눔의집’으로 발전하여 현재는 춘천지역자활센터, 공부방, 한부모희망센터 등 지역을 섬기는 일을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원주교회는 춘천교회의 신자들 중에 원주로 이사하여 살고 있는 신자들을 주축으로 1996년 9월 6일, 원주YMCA 강당에서 성인 신자 6명이 첫 미사를 봉헌하면서 설립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상주하는 성직자도 없었고, 장소도 없었으나, 작지만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로 성숙해 갔으며, 끊임없는 기도와 노력으로 1999년 원주의 빈민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학성동에 조립식 건물을 임대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사회선교기관인 원주나눔의집도 함께 설립되게 되는데, 그 경위는 참된 교회상에 대한 오랜 토론의 결과였는데요, 원주교회는 ‘성령의 교회, 선교하는 교회, 나누는 교회’를 모토로 하고, 교회재정의 반을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데 사용하기로 하고 나눔의집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와 나눔의집은 빈민지역인 학성동에 ‘무료공부방’을 열어 방과후 방치된 아이들을 불러모아 소외된 교육과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독거 어르신 가정결연 사업, 한방진료봉사, 어르신 이미용 서비스, 푸드뱅크 음식나누기 등 지역을 섬기고 변화시켜 가기 위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였습니다. 2006년 원주교회와 나눔의집은 또 다른 고민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원주시내권의 발전과 성장 이면에 상대적으로 위축되고 고립되어 가는 면단위 농촌 마을을 섬겨야 한다. 2)경쟁과 무한소비로 생명을 죽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생명을 살리는 농촌을 만들어야 한다. 3)영성적 치유와 기도를 할 수 있는 피정공간이 있어야한다. 이런 기도와 고민은 결국 호저면 생협물류센터 근처로 교회와 나눔의집을 이끌었고, 2007년 6월 호저면에 성당과 나눔의집을 새로이 축성하였습니다. 현재 나눔의집은 학성동 도시빈민 밀집지역과 농촌지역에서 하느님 나라 운동을 함께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춘천과 원주에서 교회와 사회선교기관이 어우러진 참된 교회의 모습을 만들게 된 데에는 한국사회의 민주화 요구에 교회가 응답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 근저에는 1960년대 태백에서 펼쳐진 광산촌 선교의 경험이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5대 교구장이었던 존데일리(김요한)주교님은 한국성공회 교구장으로 성품되기 전에,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교로 활동하면서 ‘토착화’와 ‘인간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존데일리 주교님은 영등포지역을 중심으로 한 초교파 산업선교와 강원도 황지의 광산촌 선교를 펼쳤는데, 황지에서의 탄광촌 산업선교는 비인간화되고 비도덕화되어 가는 상황들로부터 사람들을 구하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광부들과 청소년들에게 상호 연대를 강화하고 자신들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계몽의 집’을 시작하여, 4개 지역에 4H구락부를 조직하여 정착사업을 추진하는 한편, 보건진료활동과 신앙공동체를 시작하였습니다. 1965년 황지 성프란시스 성당이 축성되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집중시킨다면, 우리는 이곳에 중앙성당을 건립할 수 있을 것이고, 주일마다 꽤 많은 회중을 모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값싼 성취의 기쁨을 줄 수 있겠지만, 곧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우리의 시도와 목적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우리의 당면과제는 우리가 이러한 시도와 열성의 의미를 어떻게 지켜나가고, 동시에 예배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1963년 존데일리 주교)

존데일리 주교님은 삭막하고 비인간화되기 쉬운 산업지대에 성공회라는 교파의 교회와 교인을 늘려 나간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참된 공동체 형성을 목적에 두고 있었습니다. 일례로 광부들의 자녀들을 위한 고등학교 설립에 존데일리 주교님은 자신의 재산을 투자하여 건립하면서도 다른 교파들과 함께 동등한 입장에서 관계하였습니다. 황지에서의 산업선교는 1967년 정부의 에너지정책의 전환에 따라 채탄량이 줄어들고, 탄광들이 폐광되면서 인구가 급격하게 줄어들면서 기능이 축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신앙공동체는 대천덕(토리)신부님이 설립한 초교파 수도공동체 예수원과 태백교회(문곡교회)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원주의 협동조합 운동도 천주교 지학순 주교님이 원주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초기에 태백 광산촌에서 조합운동을 펼친 경험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어쩌면 같은 목적(인간화, 토착자립을 위한 협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회가 강원도에서 하느님나라와 생명나눔운동을 펼치면서, 지역의 생명운동과 만나고 연대할 수밖에 없는 필연을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나눔의집 영성과 신앙고백>

 

1. 우리는 예수와 복음을 몸으로 사는 부활의 증인이고자 한다.

2. 우리는 기도(묵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3. 우리는 노동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4. 우리는 공동체로 살고자 한다.

5. 우리는 투쟁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6. 우리는 가난하게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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