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1. 2. 15. 17:29
* 길어요. 굳이 읽으려 하지 마세요. 잘 다녀왔다고 써 본 거에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감사성찬례 中, 축복의 도유 예식 


대한성공회 전국 성직자 신학연수 후기

 

주제 : 성령으로 하나 되는공동체 (소통으로 갈등 해소)

일시 : 2011년 2월 7일(월)~9일(수)

장소 : 성공회대학교 미가엘관

 

주제 강연은 조선일보 위클리비즈 편집장인 이지훈씨에 의해서 “소통을 통한 갈등 해소”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이지훈씨는 작년(2010년)에 “혼, 창, 통”이라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지훈씨가 위클리비즈 편집장으로서 세계의 경영인들을 만나고 인터뷰한 것을 토대로 유명한 경영인들이 중요시 여기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나름대로 “혼, 창, 통”이라는 프레임으로 살펴본 것이다. 요컨대, 지도자는 (영)혼이 있어야 하고, 창조적이어 하고, (소)통을 잘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금요일을 기다리고 있다며, 자신의 일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있고, 그곳에서는 어떤 창조적인 것이 나오기 어렵다. 지도자는 이들에게 what이라 묻지 말고, why라 물으며 스스로 일에 대해 자발성을 가지고 재미를 느끼고 소명을 갖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은 금요일에 복권이 당첨돼도 다음 월요일에 다시 직장에 출근하고 싶은가요?”라는 질문을 던져보고, 급여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정말 재미를 느끼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통이란 결국 일치된 어떤 혼의 소통이다. 팀이 주어진 일에서 같은 혼을 느끼고 혼신을 다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지도자와 같은 사람을 만들지 말고, 지도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지지하라. 그러기 위해서는 경청이 중요하다. ‘노래방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노래를 듣고 즐기기 보다는 다음에 자기가 부를 노래를 찾고 있다.’ 그래서는 안된다. 경청이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 다음에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경청에는 ‘배우자경청<소극적경청<적극적경청<맥락적경청’이 있다. 맥락적 경청이란 상대방의 말 자체가 아니라 그 말이 의도하는 바를 맥락을 통해서 이해하고, 진심을 말할 수 있도록 돕는 말이다. 이지훈씨는 마지막으로 성직자들이 삶과 유리된 설교를 한다며, 신자의 대부분이 직장인이라는 것을 알고 직장인을 위한 말씀을 해 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조선일보라는 선입견을 갖지 않고 주제강연을 듣기 위해서 노력했다. 아마도 많은 성직자들이 나와 같았을 것이다. 이지훈씨의 강연은 분명 흥미로왔다. 특히, 원주나눔의집은 지난 해 공동의 소명과 가치를 찾는 작업을 함께 했었는데, 이지훈씨의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다. 북한의 주체사상은 사람을 ‘자발성, 창의성, 의식성’을 가지고 삶을 변화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운동하는 주체로 본다. 재미있게도 이지훈씨의 분석과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우스운 생각도 해 보았다. 극과 극은 통하는가? 이지훈씨는 전문 경영인을 인터뷰한 것이고 그 한계도 갖고 있다. 결국 이것의 목표가 “더 많은 자본을 획득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즉, 혼창통을 잘하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라고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어떤 직업윤리의식을 주입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어떤 좋은 결과만을 ‘선’이라고 생각하며 쫓아가던 경영인들이 이제는 과정의 의미를 음미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종교가 한 사람의 인생의 참 의미를 깨닫게 하고, 그 여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종교와 닮아가고 있다. 이지훈씨는 경영인들이 약육강식의 방식을 버리고, 적자생존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다. 강한 것이 되기 보다는 꼭 필요한 것이 되려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간으로 최영실 교수님(성공회대 신학교수 / 신약학)께서 ‘성령으로 이루는 소통과 하나됨’에 대해서 강의하셨다. 특히, 고린토교인들에게 보내는 첫째편지(고린도전서)를 살펴보면서 고린토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울로 사도가 어떻게 하라고 권고하였는지를 잘 설명해 주었다. 고린토 지역은 그리스의 항구도시이다. 고린토 지역은 와일드하고, 급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회도 열광적 신도들이 많았고, 그러다 보니 서로를 용납하기 보다는 분파를 만들고 다투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유대인과 이방인그리스도인 간에 이견도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로는 우선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강자든 약자든, 인간 모두가 사실은 심판받아야 할 죄인들이고 누구도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할 사람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차별 없이, 거저 구원과 생명을 주셨다. 값없이, 나의 공로 없이 주어진 구원이기에 “복음”이며, 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성령은 결코 자기 자신을 자랑하거나 내세우지 못하게 만든다. 성령은 나의 노력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받은’ 것이기에, 성령의 각종 은사는 어떤 것이 더 우월하거나 열등할 수 없고 동등한 것이며, 성령의 은사는 자기 유익을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회와 이웃의 유익을 위해 받은 것이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그 누구도 종교적 교리나 신념,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인간을 죽이거나 심판해서도 안된다.

바울로는 스스로를 종의 신분으로 드러낸다. 거룩한 ‘주님의 종’이 아니라, ‘여러분의 종’이라고 드러낸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따르므로, 우리를 여러분의 종으로 내세웁니다.”(1고린토 4:5) 바울로는 성령을 금식이나 금욕, 신적 제의나 신과의 합일을 통해 얻는 신비적인 체험으로 말하지 않는다. 성령은 그리스도 사건을 통한 하느님의 은혜의 ‘복음’을 통해 주어 지는 것이며, 성령을 받은 자들은 결코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되며 모든 이데올로기와 분단의 장벽을 깨뜨리고 다른 이들ㅇ르 섬기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은혜로 거저, 용서와 사랑을 받았음을 일깨워, 조건 없이 모든 이들을 받아들이며 살리는 일로 나아가게 한다.

 

세부주제 1. 한국사회와 교회의 소통

손석춘 선생님의 “한국사회 갈등과 종교의 역할” 강의가 이어졌으나, 아쉽게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듣지 못했다. 페이퍼를 통해 보면, 한국사회의 갈등은 언론이 제 역할인 갈등을 소통하게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고, 오히려 갈등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요점이었다. 종교는 이런 사회상황 속에서 바른 여론형성을 위한 소통의 다리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세부주제 2. 신자와 성직자의 소통

다음 날, 첫토론은 신자와 성직자간의 소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신자들의 대표격인 분들이 패널로 나와서 여러 가지를 주문을 했다. 정성을 다하여 전례를 드리고, 충분히 준비하여 설교를 해 달라는 점. 신자들과 성직자 간의 벽을 낮추어 달라는 점. 내가 지도자니가 모조건 따라와야 한다는 식의 기존의 사고를 바꾸어 달라는 점. 신자들을 따뜻하게 대해주고 차별하지 말아 달라는 점.

 

세부주제 3. 관구와 교구, 교구와 교회 사이의 소통

성공회대학교 총장 양권석 신부님은 소통이라는 주제가 시대의 화두이지만, 소통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실은 숨겨진 목적에 의해서 소통이 지향하는 목적이 결정된다고 진단하였다. 그러므로 교회가 소통을 이야기할 때는 소통 자체의 기술적 방법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어떤 소통을 할 것인지 분명하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회의 역사가 사실은 소통의 역사이고, 교회가 소통을 말하는 목적은 진리를 향한 식별과 수용과 실천에 있으며, 그것은 변화와 회심을 통해 하느님 나라를 향해 한걸음씩 더 가깝게 나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교회 역시 성령의 인도를 벗어난 소통과 합의가 만들어낸 불행한 오류의 역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즉, 소통 그 자체 보다는 무엇을 추구할지에 대한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교회는 종말론적 지향을 분명히 갖고 있기에 시대를 지배하는 삶에 대한 판단을 넘어서는 예언자적 목소리를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그러자면, 성령을 통한 식별과 수용과 실천의 효과적인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성공회는 “성서, 이성, 전통”이라는 권위의 삼중구조를 갖고 있다. 성서주의나 전통주의에 얽매인 것일 수 없고, 나아가 이성이 말하는 시대정신의 포로가 되어서도 안된다. 현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소통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가가기 위한 개방적 소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성공회의 전통적인 의사소통구조의 개념은 시노달리티(synodality, 함께 길을 걷는 것), 콜레지알리티(collegiality, 동반자적 상호컨설팅), 공의회성(conciliarity, 교회일치-차이와 함께하는 수용)이라고 소개하였다. 성공회는 자신을 이미 완성된 공동체로 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걷는 개인과 공동체의 순례의 길에 동반자로서 여정의 길을 걷고 있다.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지게 하고, 더 많고 다양한 목소리들을 창조적 재발견의 가능성으로 활용하자. 식별과 수용과 실천을 향한 synodality, collegiality, conciliarity의 중요성, 그리고 상호간의 지속적인 consulting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연습하자고 하였다.

 

교무국장인 김광준 신부님은 1) 교구의 자치권이 대한성공회라는 공동체의 일치와 협력을 위해서 ‘상호의존과 보완의 원리’를 찾는데 집중하여 달라고 주문하였다. 관구가 교구 간의 협의체 수준을 넘어서 더 높은 수준의 위상을 가져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2) 3개 교구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며, 교구 간에 유연한 성직자 인사교류와 재정 통합 내지는 나눔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3) 관구-교구-교회의 일치된 선교방향을 위해서, 공동선교지역(강원도, 전라도)의 교회개척과 교구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협력방법에 대해서 논의해야 한다고 하였다.

 

춘천교회 이한오 신부님은 하버마스의 의사소통의 사회이론(인간의 사회적 행위를 전략적 행위와 의사소통행위로 분류)과 야스퍼스의 의사소통과 실존적 상호소통론(현존 자체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상대와 끊임없는 성찰과 소통을 통해 본래적 자아를 찾는 실존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소개하였다. 의사소통 공동체로서 교회와 구성원들은 합리적 이사소통행위를 꾸준히 추구하고, 본래적 자아(실존)을 찾기 위해 소통하라는 주장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교회의 소통상황에 대해 몇가지 질문을 던진다. 의사소통 행위 속에 전략적 행위는 없는가? 의사소통은 추구하지만 실은 전략적 행위를 하는 자기기만적 행동은 없는가? 자기 생각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고 비합리적 돌출행위를 하거나, 교회내 전략적 행위에 의해 상처받았다고 생각하면서 그 상처와 실망감 때문에 소통 자체를 포기하고자 한 적은 없는가? 이한호 신부님은 갈등을 배제하기 위한 소통이라는 말 자체가 틀린 말이라고 하였다. 소통이란 갈등상황이 전제되어 있어야 가능하며, 문제는 어떻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일반/세계성공회/대한성공회/교구/교회(기관) 각 단위별로 목표가 다르게 설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계성공회의 목표를 공유하면서 지역 단위들은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구는 개별교회의 ‘목표컨설팅’을 잘 해야 하고, 사제가 실존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개별 교회들은 교구 전체의 목표와 구분되는 목표, 즉 신자의 숫자로 목표를 삼을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 목표를 가지고 교류와 교육 소통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세부주제 4. 주교-사제-사제 간의 소통

진천교회 강민용 신부님은 주로 주교와 사제간의 소통에 대해서 말했다.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아집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정직하고, 투명하며, 시스템을 통한 행정적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며, 신자와 사제를 일치시키는 통합되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제와 주교는 서로 존중하며 돌보아주는 상호작용에 의해서 소통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주교와 사제의 불통은 이해 부족에서 오며, 공적인 자리에서 말은 신뢰를 담보해야 하며, 예측 가능해야 하며, 들은 사람들은 방향을 읽어내서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정직한 목표설정, 경청과 희생이 낮은포복(?), 인내가 서로를 소통의 길에서 만나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

 

제주교회 박동신 신부님은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한 신학자)가 ‘신도의 공동생활’에서 제시한 원리를 살피면서, ‘주교-사제’의 직접적인 만남이 문제를 일으킨다고 했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이에 “예수님을 통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만남을 하기 전에 침묵과 기도로 예수님을 초청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한 후에 만남을 갖는다면, 소통이 장애물을 만나 위기를 맞아도 풀어갈 힘을 얻게 된다고 하였다. 참된 감사성찬례를 함께 나누고, 주교와 사제가 자신의 직무에 충실해하는 것이 소통의 통로가 된다고 하였다(이것은 사제가 자기 교회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성장이 안되면서 무슨 말을 하겠냐는 말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주교, 교구의회, 상임위원회, 교무구, 사제단 등 여러 가지 행정조직과 의사결정구조를 잘 운영하여야 하며, 존중과 순명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보면 성령님의 이끄심 속에 자발적으로 소유를 나누게 된 초대교회의 경우처럼, 물질적인 나눔이 실천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서울교구 김근상 주교님은 성직자 인사에 있어서 교구장의 솔직한 어려움을 호소하며, 사제들이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특히, 성직자들이 인사에 대한 불만을 ‘투덜거리림’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하며,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다. 뒤에서 불만을 말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공동체 내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대안을 내어오면 좋겠다고 하였다. 교회가 주교에게 준 책임과 권한에 대해서 설명하며, 주교는 사도적 교훈 및 공교적인 진리를 수호할 책임이 있으며, 교구를 대표하고 교구의 사목을 통할하며, 교구내 지역교회간의 일치의 상징이며, 치리의 권한도 있는 등 사제와는 분명히 ‘구별’된 권한과 권위가 존재한다고 하였다. 주교와 사제 간에 소통에 있어서, 권한과 권위의 차이가 있으나 균형잡힌 이해와 상호보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가능성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마지막 강연은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교육학을 가르치는 오성주 교수가 맡았다. 소통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필요한데, 사실 경청을 잘 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심판자의 위치에서 질문하는 것은 제대로 답변을 들을 수 없고 경청도 아니라는 것이다. 심판자의 길은 모든 것을 옳고 그름, 위 아래, 성공 실패라는 이분법적 분리주의에 근거하여 심판 정죄하는 태도를 취한다. 반면 학습자의 질문은 이분법에 근거한 심판 정죄자의 칼을 내려 놓는다. ‘뭐가 잘못됐지? 누구 탓이지? 내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지?’와 같은 질문을 내려놓고, ‘제대로 돌아가는 것은 뭘까? 내가 책임질 일은 뭘까? 내가 배울 점은 뭘까? 이 일에서 유익한 점은 뭘까?’와 같은 학습자의 질문이 자율성과 내면성과 관계성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미국 퀘이커 교도들(전례와 교리가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급진주의 교단)이 고안한 “신뢰써클(신뢰모임, 정화모임)”의 방식을 소개하였다. 개개인 모두에게 면에 내면 자신의 문제들을 접근하여 다루려 할 때 필요한 안내역할과 해결능력을 제공해 주는 내적교사 혹은 진실의 목소리가 있다고 한다. 여러명이 함께 모인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내어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청하며 문제해결을 할 수 있게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지켜야 할 규칙들이 있는데, 구성원들은 모임 이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비밀을 지켜야 하고, 당사자가 대화요청을 하지 않는 한 이문제로 당사자와 이야기해서는 안된다는 이중비밀보호 원칙이다. 그리고 질문은 가르치거나 감정적 동감을 표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고 냉정하면서도 정직하고 개방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그게 당신 어머니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본적은 있나요?” 같은 질문은 금지된다. “당신은 전에도 이와 같이 느낀 적이 있었습니까?”와 같은 식의 질문이 필요하다. 사실 이런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며, 한국적인 분위기는 공감해주고 격려해주는 식에 익숙해있기 때문에 직접 적용하기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2박3일 동안의 강연 내용을 모두 요약해 보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첨부파일을 참고하기 바란다.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으나 강연은 강연이며 거기에서 어떤 실천이 도출되기는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다만, 앞으로 사목의 현장에서 강연의 내용들을 기억하고 접목하며 적용하는 과정이 이어지게 되리라 생각한다. 신학연수를 할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기도로 도움을 주신 교회에 감사하며, 빈 자리를 채워 준 원주나눔의집에게 감사드린다.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춘천교회 이한오 신부님과 강연 후에 차를 마시며 간단하게 나눈 대화를 마지막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춘천교회는 춘천나눔의집(박순진 신부님), 프란시스 수도회, 요한피정의집으로 구성된 춘천선교협의회를 진행중이라고 한다. 구체적인 어떤 목표를 정하지는 못하였고, 서로 친해지고 소통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 밥을 먹고, 공부하고, 기도한다고 한다. 우리 교회는 춘천교회와 함께 연합감사성찬례를 드리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긍정적이었고, 다만 어떤 구체적인 목표를 두기 보다는 일단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고 밥먹고 하는 과정을 하자는 답을 받았다. 공동선교구역인 강원도에서 어떤 선교방향을 잡을 수 있을 지 기도하고, 소통하고, 밥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 나눌 계획이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일내는 은자 2011.02.16 11:23  Addr  Edit/Del  Reply

    신부님. 더 이상 잘 요약할 수는 없을 듯 합니다.
    마지막 강의 '경청'은 실천이 도출될 가능성이 있을 듯 해요^^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