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성공회원주나눔의집 2011. 2. 16. 11:40

신앙은 사랑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나역시 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사랑이 전염되면, 결국 하느님의 뜻이 온 세상에 퍼지고 하느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열렬한 신앙인에게서 열렬한 사랑이 나오기보다는 증오와 편협함이 넘쳐흐르는 모습을 볼 때 당혹감을 느낍니다.

며칠 전 몇분의 목사님과 장로님 몇분이 조계사에 들어가 대웅전 앞에서 확성기로 "부처가 비를 줘? 비가 와야 사는거야. 비가 와야 농사 짓고 밥 먹고 사는 거야. 그것도 모르면서 밥 먹으면 돼?" 하고 비난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은 그 곳에서 그렇게 외치다가 성난 불자들에 의해서 폭행당해 순교하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아니면 하느님께서 당장 불을 내려 대웅전과 우상숭배자들을 불사르기를 바랐던 것일까요? 그도 아니면 그 영상을 보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분노를 함께하기를 바랐을까요? 분명한 것은 그분들은 확신범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과 신념에 의해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신앙은 증오와 편협함에 기반해 있습니다. 그분들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 아니라 증오하고 미워하는 하느님입니다. 구원의 하느님이 아니라 심판의 하느님입니다.

미국 성공회를 변화시킨 두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장애인이자 흑인이었던 신자 '제임스 버드 주니어'가 인종차별주의자의 폭행으로 사망한 사건. 다른 하나는 동성애자였던 청년신자 '매튜 쉐퍼드'가 동성애차별주의자들의 폭행과 방치로 사망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전체 교회를 큰 슬픔에 빠트렸습니다. 그리고 도데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가를 자문하게 했습니다. 쉐퍼드는 동성애 성향을 숨기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매주일 복사로 봉사를 할 정도로 누구보다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성적지향을 공개했다는 것으로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살해되었습니다. 에피스코팔 라이프(the Episcopal Life)지는 사설에서 이제는 인종차별주의라는 단순한 말도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한다. 대신에 ‘증오’와 ‘편협한 신앙’이야 말로 온갖 형태의 차별주의를 낳는 근원으로 규정하고, 이를 우리의 신앙적 운동과 행동으로 척결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합니다. (주낙현 신부님 블로그 참고 http://viamedia.or.kr/1998/11/15/60 )

하느님은 심판과 증오의 하느님입니다. 그러나 그 심판과 증오의 대상은 연약한자들이나 소수자들이 아닙니다.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하며 모든 사람들의 경배를 받으려 했던 파라오와 로마황제들에 대한 분노와 심판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가난한 자들에게 재물과 행운을 받게 해 주겠다고 꽤어 착취하고 그른 망상에 사로잡히게 만든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분노와 심판입니다. 정의와 평등을 무시한 채, 부자가 되는 것이 선이고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라고 선전하는 거짓자본주의자들을 향한 분노와 심판입니다.

하느님은 창조의 하느님이고, 구원의 하느님입니다. 생명이 용솟음치고, 자비가 흘러 넘치는 마음을 가진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고른 비와 햇살을 비춰주시는 분이십니다(그러나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한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연약한 자들을 일으키시고, 참 빛을 보게 하며, 사랑을 음성을 듣게 하며, 진심어린 말을 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용납과 관용의 정신이 멍든 세계를 낫게하고, 폭력을 종식시킬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진 사명입니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경청을 할 수 있다면 우린 더 많은 기적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건 무슨 사진일까요?>


<이건 무슨 사진일까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